Genesis to Revelation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은 하나님의 계시를 깨닫게 합니다. 저는 지난 주 월요일 밤에 꿈을 꾸었는데, 꿈에서 일어나자 마자 창세기와 계시록의 말씀들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열리게 되었고, 그 안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계시들을 더욱 선명하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그 꿈을 통해 하나님께서 제게 깨닫게 하신 말씀들을 나누고자 합니다.

꿈 속에서 저는 집으로 가는 열차 안에 있었습니다. 제가 안전하게 집에 도착하도록 돕기 위해 두 친구들도 열차에 함께 타고 있었습니다. 열차 안에서 어느 순간 잠이 들었고, 잠에서 깨어나보니 열차 안에 있던 친구들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어느 정류장에서 내려야 할지 몰랐던 저는 그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열차에서 내려서 보게 된 도시의 모든 것들은 연한 회색이었습니다. 건물들과 상점들도, 사람들과 거리들도 온통 회색이었습니다. 그곳은 즐거움도 기쁨도 없는 지루한 곳이었습니다. 저는 그곳이 어디인지 몰랐기 때문에 지나가는 한 여인에게 이 도시의 이름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그 여인은 ‘이곳은 666도시입니다’라고 아무런 감정 없이 무표정하게 대답했습니다. 어떻게 집으로 갈 수 있는지를 몰랐던 저는 그곳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봤지만, 그 누구도 길을 아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집을 찾아 가야겠다고 다짐했고 그 순간 꿈에서 깨어나게 되었습니다.

여섯째 vs일곱째   A SIXTH DAY vs THE SEVENTH DAY

성경은 ‘영적인 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모든 말씀은 반드시 영적인 영역에서 풀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많은 크리스천들은 성경의 말씀들을 제한적인 시간적인 순서를 따라 이해하려고 합니다. 창세기의 내용은 태초에 일어난 과거의 일이고, 계시록의 내용들은 미래에 일어날 일들이라고 생각하며 안의 계시들이 성취되기를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면 성경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영의 세계는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동일하시며, 그 안에는 수많은 차원(dimension)이 존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세기의 말씀도, 요한계시록의 말씀도 바로 오늘을 위한 말씀입니다. 말씀에 따르면, 어떤 사람들은 창세기 1장의 여섯째 (a sixth day) 머물러 있는 아담에 속한 자들’,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13:16-17) 머물러 있을 것이며, 다른 어떤 이들은 창세기 2장의 일곱째 (the seventh day) 들어가신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표를 받는 자들(7:2-4) 것입니다.

뱀의 말을 믿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아담은 죄로 인해 죽게 되었습니다. 그 아담의 뒤를 이어 여섯째 날에 머물러 있는 모든 자들도 동일하게 사망의 언약, 스올의 언약으로 인해 죽게 될 것이며, 무화과 잎으로 자신의 수치를 가렸던 아담과 같이 거짓을 피난처로 삼게 될 것입니다(사28:15). 이들은 짐승의 표를 받아 그 우상을 숭배하며 666이라는 도시에 머물러 자신들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도 깨닫지 못한 채 살게 됩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일곱째 날의 안식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죽게 될 것입니다.   

(사28:15) 너희가 말하기를 우리는 사망과 언약하였고 스올과 맹약하였은즉 넘치는 재앙이 밀려올지라도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리니 우리는 거짓을 우리의 피난처로 삼았고 허위 아래에 우리를 숨겼음이라 하는도다

(Is28:15) Because you have said, “We have made a covenant with death, and with Sheol we are in agreement. When the overflowing scourge passes through, it will not come to us, for we have made lies our refuge, and under falsehood we have hidden ourselves.”

생명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담과 언약을 맺기 위해 동산에 계셨습니다. 하지만 아담은 주님 대신 사망과 언약을 맺음으로 하나님의 동산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는 기회, 일곱째 날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아담이 그리스도 대신 죄를 선택했던 것과 동일하게 오늘날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음부의 권세 아래서 사망을 목자로 삼으며 여섯째 날에 머물러 있습니다(49:14). 우리는 참된 목자가 되시는 그리스도와 언약을 맺음으로 여섯째 날을 지나 일곱째 날로 들어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미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시작되었으며, 일곱째 날의 안식은 우리를 위해 준비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일곱째 날만을 축복하시고 거룩하게 하셨습니다(창2:3).아버지께서는 오늘도 우리가 믿음으로 그 축복의 일곱째 날, ‘안식’에 들어가기를 기다리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진정한 하나님, 즉 우리의 안식처가 되시고 의와 평강과 희락이 되시는 그 하나님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히4:1-7)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 제칠일에 관하여는 어딘가에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또 다시 거기에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면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나니

(Heb4:1-7) Therefore, since a promise remains of entering His rest, let us fear lest any of you seem to have come short of it. For indeed the gospel was preached to us as well as to them; but the word which they heard did not profit them, not being mixed with faith in those who heard it. For we who have believed do enter that rest, as He has said: “So I swore in My wrath, ‘They shall not enter My rest,’ ” although the works were finished from the foundation of the world. For He has spoken in a certain place of the seventh day in this way: “And God rested on the seventh day from all His works”; and again in this place: “They shall not enter My rest.” Since therefore it remains that some must enter it, and those to whom it was first preached did not enter because of disobedience, again He designates a certain day, saying in David, “Today,” after such a long time, as it has been said: “Today, if you will hear His voice, Do not harden your hearts.”

물리적인 감각 vs영적인 믿음   PHYSICAL SENSE vs SPIRITUAL FAITH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구약성경을 옛 언약, 신약성경을 새 언약이라 부릅니다. 언약은 육신적(physical)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벌거벗은 몸을 보게 된 것과 같이 옛 언약은 보이는 육신적인 것에 머무릅니다. 하지만 언약은 영적(spiritual)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을 열어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날마다 아버지의 음성을 들으며 그분을 따라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창조의 빛(creative light)’ 안에 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초에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덮여있던 상태를 변화시키며 모든 아름다운 것들과 생명을 창조하셨듯이,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들은 혼돈하고 공허한 흑암과 같은 세상의 어떠한 것도 빛으로 변화시킬 있습니다. 여전히 어둠에 머물러 있을 것인지, 아니면 빛으로 옮겨질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물리적인 세상(the material world)과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the spiritual kingdom of God)는 다릅니다. 물리적인 세상은 우리에게 물리적인 감각(physical sense, sensation)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영적인 세계에서 다스리기 위해서는 그와 다른 영적인 감각(spiritual sense, sensation)이 필요합니다. 믿음은 영의 영역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으로 물리적인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변화시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이 선포될 때 모든 것들이 실제로 나타나고 있게 될 것을 믿으셨습니다. 그가 선포할 때 파도가 잠잠해졌고, 물이 포도주로 변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현실은 물리적인 것들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믿음을 통해 결정됩니다. 물리적인 어떠한 것도 그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영적인 우리를 다스릴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몸이 아픈 것을 물리적인 느낀다고 해도 그것이 우리의 진정한 현실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물리적인 몸이 아픈 상태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이 깨어나 그 몸을 다스려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1:27). , 우리는 영이신 하나님의 성품과 모습을 따라 지어진 영적인 존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로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모든 것을 다스리는 권세와 모든 것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영이신 주님 안에 거할 때에 우리는 물리적인 세상으로부터 오는 모든 제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여정    THE JOURNEY TO THE KINGDOM OF GOD

하나님께서는 오직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만 하나님의 생기를 코에 불어 넣으셔서 ‘생령(a living creature)’이 되게 하셨습니다(창2:7).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창조물(creature)’과 ‘짐승(beast)’은 다릅니다. 창조물은 하늘에, 짐승은 땅에 속합니다. 사단은 하늘에 있던 천사였지만 결국 땅으로 내어 쫓기게 되었고 큰 용, 옛 뱀, 짐승 등으로 기록되었습니다(창3:14; 계12:9). 거듭 말하지만, 창세기는 맨 처음의 일이 아니며, 요한계시록 또한 맨 나중의 일이 아닙니다. 창세기와 계시록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선과 악, 처음과 나중, 옳고 그름 등의 이분법적 사고를 가지고 성경을 대하는 것을 멈추고, 영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처음도 나중도 모두 하나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오직 영원한 생명만이 있습니다. 창세기와 계시록의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여섯째 날에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옛 뱀이 존재하지만, 일곱째 날에는 생명나무이신 그리스도만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계22:2).

우리는 사람의 차원(the dimension of a man)’ 육일에서 나와, 세상에서 나와 그리스도의 차원(the dimension of Christ)’ 칠일’, 하나님 나라로 옮겨질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여정에서 나타나 있듯이, 출애굽을 지나 약속의 땅으로 가는 것이 우리의 여정입니다. 여섯째 날의 디멘션에 태어나 이 땅에 사는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의 수 666의 삶을 떠나 하나님의 나라, 안식, 약속의 땅으로 가는 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의 여정입니다. 이것은 안뜰에서 성소를 지나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영적인 지성소로 나아가는 모세의 성막 구조에도 동일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에 거하게 되는 놀라운 복음은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 것처럼 죽음을 통해 성취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있도록 인도하는 구원자는 오직 부활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 만이 우리의 목자가 되십니다. 세상의 종말이 오고 엄청난 환란이 지나간 후에 예수님께서 땅에 오시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바로 지금 시간에도 믿음으로 일곱째 ,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갈 있습니다.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모든 여정을 통해 우리는 안식으로 들어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여섯째 날의 차원에서 살 것인가, 아니면 일곱째 날의 차원에서 살 것인가를 확실히 선택해야 합니다. 혈과 육에 속한 자, 물리적인 세상에 머물러 있는 자들은 이 세상에 다가올 모든 혼동과 환란, 죽음과 질병, 재난을 지나야 하며 약속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나라로 거듭난 자들, 어둠의 힘에서 벗어나 아들의 나라로 옮겨지게 된 자들은 그 무엇도, 죽음 조차도 그들을 건드릴 수 없습니다.  

동산의 생명나무   THE TREE OF LIFE  IN THE GARDEN

에덴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였고, 에덴의 동방에 창설된 동산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고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도록 허락하신 곳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할 수 있는 동산 또한 창설하셨고 그 가운데에 생명나무(창2:8-9;계2:17; 계22:14-19)를 두셨습니다. 원래 하나님과 사람의 사이에는 어떠한 장벽도 베일도 없었습니다. 아담이 그가 있어야 할 그 동산에 있었을 때에 그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공급되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동산에 거할 때에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공급될 것입니다.

(창2:8-9)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Gen2:8-9) And the Lord God planted a garden toward the east, in Eden [delight]; and there He put the man whom He had formed (framed,constituted). And out of the ground the Lord God made to grow every tree that is pleasant to the sight or to be desired—good (suitable, pleasant) for food; the tree of life also in the center of the garden, and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the difference between] good and evil and blessing and calamity.

(창2: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Gen2:16-17) And the Lord God commanded the man, saying, You may freely eat of every tree of the garden; But of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and blessing and calamity you shall not eat, for in the day that you eat of it you shall surely die.

우리의 마음은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와 땅의 물리적인 세계를 이어주는 동산입니다.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바로 우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가 아닌 생명나무의 열매를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날에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습니다(창2:16-17). 죄는 반드시 영적인 죽음을 초래합니다. 죄는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와 우리를 갈라놓습니다. 우리는 날마다의 삶 속에서 그 어떤 죄도 우리의 마음에 틈타지 않도록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작은 부정적인 일 하나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기쁨과 감사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언제나 죄를 다스려야 합니다.     

(창3:1-5)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Gen3:1-5) Now the serpent was more cunning than any beast of the field which the Lord God had made. And he said to the woman, “Has God indeed said, ‘You shall not eat of every tree of the garden’?” And the woman said to the serpent, “We may eat the fruit of the trees of the garden; but of the fruit of the tree which is in the midst of the garden, God has said, ‘You shall not eat it, nor shall you touch it, lest you die.’ ” Then the serpent said to the woman, “You will not surely die. For God knows that in the day you eat of it your eyes will be opened, and you will be like God, knowing good and evil.”

우리에게 끊임없이 간교한 말로 속삭이려는 뱀을 다스리지 않고 그와 대화를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하와처럼 죄에 종 노릇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땅을 정복하고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명하셨습니다(창1:28).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뜻을 따라 반드시 죄를 다스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4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성령에 이끌려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셨지만, 마귀가 유혹하는 그 어떠한 말에도 유혹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성령의 능력으로 마귀를 이기셨습니다. 혈과 육으로는 누구도 원수의 유혹을 이길 없습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만 이길 있습니다.

죄로 인한 영적인 죽음   SIN AND SPIRITUAL DEATH

(창3: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Gen3:7) Then the eyes of both of them were opened, and they knew that they were naked; and they sewed fig leaves together and made themselves coverings.

죄로 인해 아담과 하와는 육체적인 감각(physical sense, sensation) 눈이 열렸고, 대신 그들의 영은 무감각해졌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영적으로 죽게 되었습니다. 아담이 창조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그를 두르셨지만, 죄가 아담에게 들어온 이후 그 영광의 옷은 벗겨졌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벌거벗음을 보고 수치를 느꼈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자신들의 수치를 가렸습니다. 하나님의 영광 대신 물리적이고 일시적인 것들도 자신들을 보호하려 했던 아담과 하와 모습은 오늘날 우리의 삶에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우리는 일시적인 세상의 것들로 스스로를 만족시키려는 삶을 내려놓고, 오직 하늘로부터 오는 영원한 처소이신 그리스도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고후5:2). 아담이 죄로 인해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영광, 그리스도를 되찾는 것이 복음의 여정입니다. 

처음 죄를 지었을 때에 우리는 찔림을 받지만, 계속 죄를 지으면 무뎌지고, 결국 죄는 우리의 양심을 가립니다. 아담 이후 계속된 인류의 죄로 인해 우리의 마음은 그 어떠한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되었습니다(렘17:9). 이미 가려지고 부패해진 우리의 양심은 온전히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눈에 좋은 대로 행하며 옳다고 생각하는 소견대로 행한다면 그것은 우리를 멸망으로 인도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언제나 성령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 안에서는 스스로 선악을 분별하려고 하는 우리의 감각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곳에는 오직 생명나무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옳으며, 그의 생각은 언제나 완전하십니다. 온전하신 사랑이신 하나님의 심판은 언제나 공평하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양심이 아닌 오직 하나님을 믿으며 그분을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있는 물질적인 것들에 집중할 때에 죄는 계속 만연하게 될 것이고, 우리는 그 죄의 법 아래 종속된 노예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다스려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죄를 지을수록 우리의 육신적 감각은 더욱 강하게 열리게 되고 우리의 영적인 눈과 귀는 더욱 가려지게 것입니다.         

(사6:10)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Is6:10) “Make the heart of this people dull, and their ears heavy, and shut their eyes; Lest they see with their eyes, and hear with their ears, and understand with their heart, and return and be healed.”

(렘5:21) 어리석고 지각이 없으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이여 이를 들을지어다

(Jer5:21) ‘Hear this now, O foolish people, without understanding, who have eyes and see not, and who have ears and hear not:

(겔12:2) 인자야 네가 반역하는 족속 중에 거주하는도다 그들은 볼 눈이 있어도 보지 아니하고 들을 귀가 있어도 듣지 아니하나니 그들은 반역하는 족속임이라

(Ezk12:2) “Son of man, you dwell in the midst of a rebellious house, which has eyes to see but does not see, and ears to hear but does not hear; for they are a rebellious house.

죄를 지을수록 우리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영적인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자들이 됩니다(행28:27). 마치 나이가 들어 눈과 귀가 흐려지면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이 큰 소리로 말해도 들을 수 없게 되는 것처럼, 우리 안에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게 됩니다. 여러분은 날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습니까?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보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강조해서 말씀하셨습니다(요3:3). 스스로 타협하지 말고, 정직하게 말씀에 자신을 비추어 돌이켜보며 주님께 도움을 구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말씀을 언제나 들으며 그분의 말씀만을 전하셨습니다. 주님은 이 땅에 계신 동안에도 세상에 대해 집중하지 않고 오직 아버지의 음성에 귀 기울이셨습니다. 그의 마음이 청결했기 때문입니다. 주님만이 우리가 따라야 할 모델이 되십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여정의 첫 스텝입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은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자들입니다(롬8:14). 사단은 하와를 유혹할 때에, 그리고 예수님을 시험할 때에도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모든 것들을 가지고 유혹했습니다. 이 시스템은 여전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육신적인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은 영적인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지 않다고 말씀합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은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요일2:15-16).

죄로 인해 땅은 저주를 받았고 사람은 저주에 종속되게 되었습니다(3:14-19). 흙으로 지어진 사람의 몸은 각종 질병과 고통의 저주 아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저주를 끊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우리 모두가 다시 영적인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아담 안에 있는 자들은 끊임없는 저주와 질병, 죽음 아래 놓이게 될 것이며,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 복음을 진정 믿는다면, 우리는 약속의 땅, 안식의 제 칠일에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은 단순한 지식이나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선택하지 않고 날마다 생명나무이신 그리스도를 선택함으로 우리의 영은 다시 깨어나야 합니다. 세상의 육신적인 차원에서 벗어나 영적인 하나님 나라를 보고 아버지의 음성을 듣는 영의 능력과 권세를 받아 죄를 다스리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미 저주받은 세대를 따라 형성된 우리의 생각에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12:1-2).

사람의 , 짐승의    THE NUMBER OF A MAN, THE MARK OF THE BEAST

(계13:15-18) 그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  

(Rev13:15-18) He was granted power to give breath to the image of the beast, that the image of the beast should both speak and cause as many as would not worship the image of the beast to be killed. He causes all, both small and great, rich and poor, free and slave, to receive a mark on their right hand or on their foreheads, and that no one may buy or sell except one who has the mark or the name of the beast, or the number of his name. Here is wisdom. Let him who has understanding calculate the number of the beast, for it is the number of a man: His number is 666.

숫자 6은 영적으로 죽고 육신적인 세계에 머무르게 된 인류, 즉 아담의 죄로 인해 저주를 받아 살인을 저지른 가인과 가인의 6대손 라멕처럼 짐승의 표를 받게 된 자들, 창세기의 여섯째 날에 머무른 자들, 계시록에 기록된 짐승의 우상을 경배하게 된 사람의 수 666에 연결됩니다. 가인의 후손이 된 인류는 사단을 경배하는 자들이 되어 육신적인 차원에 갇혀 살게 되었습니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배일찐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 칠배이리로다 하였더라(창4:24)’는 말씀처럼 죄로 인해 저주받은 인간은 세대를 지날수록 가중한 죄와 사망을 낳게 되었고, 그들의 생각은 점점 사단의 생각과 같아져서 결국 사단이 말하는 것을 믿고 그를 경배하는 상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경고하셨듯이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먹은 아담의 후손, 가인의 후손이 된 모든 사람은 죄의 결과로 인해 영적으로 죽게 된 것입니다.

가인은 저주 받은 땅에서 난 받은 소산을 하나님께 드렸지만,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의 희생 제사를 드렸습니다(창4:3-4). 자신의 제물을 받지 않자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한 가인에게 하나님께서는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4:6-7)’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단은 언제나 우리가 죄의 노예가 되기 원하지만 우리는 그 죄를 다스려야 합니다. 죄를 다스리지 못한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이게 되었고, 땅에 뿌려진 아벨의 피는 결국 짐승에게 드려진 피의 제사가 되었습니다. 사단은 더 많은 피가 땅에 뿌려지기를 오늘도 원하고 있습니다. 종신토록 땅에 다시며 흙을 먹어야 하는 사단은 자신을 더 강하게 하기 위해 계속해서 더 많은 사람의 죽음과 질병, 희생을 요구합니다.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피가 뿌려짐으로 한 나라가 세워지는 오늘의 세상은 바로 사단에게 더 강한 힘을 주는 피의 제사를 토대로 하고 있습니다. 생명은 피에 있으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의 DNA 안에는 영원히 썩지 않는 능력이 담겨 있습니다(딤후1:10). 그렇기 때문에 사단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DNA를 파괴하려 합니다. 가인이 저지른 죄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그 피를 대적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우리에게 다른 씨,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가인의 뒤를 이어 짐승의 표를 받아 666 세상에 살고 있는 자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표를 받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자들은 확연히 구분됩니다.

(창4:25)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Gen4:25) And Adam knew his wife again, and she bore a son and named him Seth, “For God has appointed another seed for me instead of Abel, whom Cain killed.”

깨끗한 그릇   THE CLEAN VESSEL

계시록은 앞으로 일어날 미래적인 일들에 대한 계시의 말씀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의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이루셨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약속은 성취되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죄에 종속되어 짐승의 표를 받고 살 수도 있고, 성령의 능력으로 죄를 다스리며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7개의 뿔을 가진 짐승, 큰 용은 마치 하나님의 보좌에 계신 어린 양과 같이 자신을 위장하며 종교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속이며 그들을 멸망으로 이끕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지 않고 죄가 관영하며 가득 차고 있는 이유는 바로 종교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어린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십니다. 주님만이 하나님의 보좌에 있는 책의 일곱 인을 떼시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계5:1-14). 예수 그리스도만이 닫혀졌던 우리의 영의 눈을 열어 하나님 나라를 보게 하시고, 다시 그 하나님 나라, 일곱째 날의 안식으로 들어가게 하십니다.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사람과 함께 거하시는 장막입니다(계21:1-7). 우리는 믿음을 통해 만물을 창조하신 빛,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거룩하게 하신 일곱째 날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육이 아닌 영의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하나님의 아들들은 영의 권능으로 죄를 다스리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을 회복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창조된 만물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았지만, 아직 모든 것이 주께 속한 것은 아닙니다. 만물은 다시 주께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받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죄로 인해 오염된 우리의 생각은 잘못된 것들을 생각하고 느끼고 원하며 옳은 것을 분별할 없는 상태가 되었지만,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갈 때에 보혈이 우리를 다시 정결하게 하실 것입니다.       

(요14:10-11)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Jn14:10-11) Do you not believe that I am in the Father, and the Father in Me? The words that I speak to you I do not speak on My own authority; but the Father who dwells in Me does the works. Believe Me that I am in the Father and the Father in Me, or else believe Me for the sake of the works themselves.

(요14: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Jn14:20) At that day you will know that I am in My Father, and you in Me, and I in you.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날(요14:20)’은 바로 여섯째 날이 끝나고 일곱째 날이 된 그 날을 의미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저주받은 여섯째 날에서 우리 모두를 구원하기 원하십니다. 그 날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생각하고 원하는 모든 것들을 정결하게 하십시오. 주님을 담을 수 있는 깨끗한 그릇으로 자신을 준비하십시오. 이것은 그 목회자의 책임도, 그 누구의 책임도 아닌 우리 각자의 책임입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사모하며 바라볼 때에 신실하신 주님께서는 여러분 안에 임하실 것입니다. 바로 오늘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었다면 마음을 겸비하여 그 주님을 찾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받으십시오.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의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는 모두가 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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