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모습

1) 필요에 대한 인식뿐

주님께서는 우리의 사고방식이 주님의 것으로 온전히 변화되길 원하십니다. 우리의 생각이 변화되지 않으면, 결국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이 세상에서 생존하기 위해 날마다의 필요에 따라 움직여지는 우리의 고질적인 생각의 패턴을 주님께서는 가장 다루기 원하십니다.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면, 우리의 사고가 얼마나 자신의 필요에 대해서만 열려 있는지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생각하는 이상으로 우리의 인생은 필요에 의해서 움직여지고 있습니다. 그 필요가 일용할 양식이던, 입을 옷이던, 물질이던 그 필요에 의해서 생각하고 반응하며 결정하는 삶에서 우리는 쉽게 벗어나지 못합니다. 한 주를 또 다시 살아가기 위해 정신적, 감정적, 영적 필요를 채우러 교회에 오는 사고방식도 그 한 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필요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이와 같은 사고방식을 파쇄하기를 원하십니다.

2) 두려움으로 인한 안식과 평강의 부재
우리는 ‘필요한 것들이 채워지지 않으면 어떡할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완전한 안식과 평강을 갖지 못하며 살고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채워지지 않을 것에 대한 강한 두려움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과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두려움이 있으면 남에게 나누어 주는 삶을 살지 못합니다. 내가 가진 것을 남에게 주면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없어진다는 두려움 때문에 그 무엇도 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나누어도 고갈되지 않는 완전하고 충만한 모든 것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부족함 없이 충족하게 살았습니다. 그들은 사도들 앞에 자신의 재산을 가지고 와서 나눠주는 삶을 살았고, 그들 중에는 가난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행4:32-35).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의식이 그들 속에 있었기에 그들의 모든 필요는 채워졌고, 남에게 주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변화되어야 할 인식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세워져 있는 이 ‘우상의 제단’과도 같은 사고방식을 완전하게 파쇄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이제는 이 세상에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를 염려하며 자신의 필요에만 집중하게 되었던 사고의 초점이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생각의 초점이 주님께로 온전히 맞춰지는 것은 쉽지 않으며 단번에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매 순간 끈기와 간절함을 갖고 지속적으로 연습하는 믿음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야곱의 우물과 같다

예수님은 여러 비유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가르치셨습니다. 그 중에서 요한복음 4장, 예수님께서 야곱의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과 나눈 대화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조명해 보려고 합니다.

1) 줄지 않는 깊은 우물물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6절).” 야곱의 우물은 우리 안에 있는 우물을 상징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이 우물의 깊이는 무한하고 끝이 없어 그 깊이를 측량할 수 없습니다. 이 곳은 인간의 생각과 지식으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영적 세계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끝없는 영적 세계에 들어가게 되면 우리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끊임없이 더 깊은 곳으로 갈 수 있게 됩니다.

2) 모든 것이 있는 우물물
그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나라에는 모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 위에서 살지만 우리 안에 두신 하나님의 나라에 살면서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매일 무엇인가를 열심히 합니다. 돈을 벌기 위해 혹은 명예나 권력을 얻기 위해서 일과 공부를 합니다. 사마리아 여인 또한 우리처럼 자신의 삶에 필요한 물을 스스로 긷기 위해 우물가에 매일 왔습니다 (7절). 생명을 이어가게 할 물을 얻기 위해서 이 여인은 매일 물을 길으러 온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안의 우물에 대한 인식 즉, 영적인 세계에 대한 인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3) 우리 안에 있는 우물물
그 당시 유대인은 사마리아인과 상종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여인은 예수께 “당신은 유대인으로써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하시나이까” 라고 물었습니다 (9절).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여인의 질문에 대해 대답하시기 보단 주제를 바꾸어, “너는 내가 주는 물을 마시면 절대로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13-14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말씀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말씀의 의미는 ‘내가 주는 생명의 물을 마시면, 네 안에 그 마르지 않는 우물이 있기 때문에 다시는 목 마르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이 본문을 통해 우리는 아무리 구원받았고 성령으로 충만하다고 해도 여전히 필요를 채우며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물을 길으러 매일 매일 우물가로 나오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우물이 밖에 있는 한 우리는 목이 말라 매일 우물로 물을 길으러 와야 하지만, 이 우물이 우리 안에 있으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4) 이 세상보다 더 실제인 우물물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과 대화를 하던 중, 예수님께서 자기의 사생활에 남편 다섯 명이 있던 것을 알고 계심에 놀라며 그가 선지자라고 생각되어 질문했습니다 (16-19절). “우리가 어디서 예배를 합니까? 우리 조상은 야곱의 우물이 있는 이 산에서 예배한다고 하고, 당신들은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하는데 당신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20절)” 하지만 예수님은 지형적 어느 장소에 대해 언급하시지 아니하고, 안에 있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찾으신다고 답하셨습니다 (21-24절).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한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신령’은 우리가 알다시피 영적인 영역을 의미합니다. ‘진정’은 그리스어로 ‘나타난 실제 (revealed reality)’ 라는 의미입니다. 곧,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 그 영적 영역에 들어가서 예배를 드려야 함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와 예배를 드릴 때, 우리 안의 하나님의 나라가 ‘실제’로 드러난 그 곳에서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가 사는 이 세상보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이 세상보다 더 실제라는 인식이 우리 안에 있어야 진정한 예배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하나님 나라의 실제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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